약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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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쿠마 켄고 (디자인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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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건축관련 책을 읽었습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작년 9월 15일(실제로는 훨씬 전에 읽었지만), "건축의 거인들, 초대받다"는 8월 24일, "건축가들의 20대"는 7월20일이니까 거의 반년만에 읽은 것 같습니다.
'건축의 거인들, 초대받다'와 '건축가들의 20대'는 에세이형식이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읽혔으나
쿠마 켄고의 책은 조금 어려웠습니다.

모더니즘, 특히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취한 방법에 대하여 쓴 글에 좀 관심이 가더군요.
아르누보, 세제션, 데 스틸, 입체파, 미래파 등 20세기 초에 등장한 사조들은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이에 비해  해체계열은 싫어했죠.) 그러나 그 이후 등장한 모더니즘에 모든 것은 끝나버렸습니다.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모더니스트 였습니다. 저는 르 꼬르뷔제은 건축의 신으로 부르긴합니다(근대 건축의 5원칙은 .성경의 10계명 같은 것이죠 ^^)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모든 것을 다 없애고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쿠마 켄고는 시대가 바라는 건축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책의 내용중 일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모더니즘에 대하여 -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의 상품화'를 잘 이해했다. 필로티로 건축을 띄우거나(빌라 사보와), 기단위에 올리는(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등의 수법을 통하여 주변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상품처럼 포장했다. 일반 대중은 상품의 작동원리를 궁금해하지않고, 포장되어 예쁘다거나 작동법이 복잡하지않고 쉬운 상품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형태, 공간을 언급하지않고 가로로 긴 창, 얇은 철골기둥을 돋보이게 하는 수법을 통하여  테크놀로지와 모던함을 돋보이게 하여 대중의 관심을 얻었다.
초기 모더니즘의 주제인 공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평가가 애매하지만, 오브제로서의 단순 명쾌한 형태를 추구하며, 주택디자인에 기성건축가에 대한 비평성을 담음으로서 차별화를 꾀하였다. 즉, 중산층에 욕망(주택)에 편승하는 것과 기성세대의 방법과 미학에 칼을 들이대는 양면성의 확보를 통하여 20세기 건축의 헤게모니 차지한다.

◎ '이긴다'는 논리와 '진다'는 논리
과거 사람들은 이긴다는 논리로 이야기했다. 이긴다는 것은 외부의 '악'에 대해서 이기는 것인데, 악이 없어진 현재 이길수가 없다. 그래서 '진다'는 수사법으로 이야기한다.
형식은 자유로움에 지고있고, 공급자는 수요자에 지고 있다. 건축에서 진다는 것은 '자기생각만 하는 건축주에게 지다' '기묘한 형태의 부지에 어쩔수 없이 지다' '불합리한 건축법규에 지다' '공사 예산부족에 지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게된다.

◎ 모더니즘 vs. 포스트 모더니즘
로버트 벤츄리의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발점이 된다. 이 책에는 과거의 양식적인 건축의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모더니즘은 양식적 건축을 부정했기에 논란이 되었다.
모더니즘이 양식적 건축을 부정한 이유는 건축의 소유자가 계속바뀌기때문에 바뀜에 대해 대응하기 위하야 양식을 배제하게 된다.(겅제적인 접근)
'양식'은 개인의 취향이기때문에 모더니즘은 무개성적인 표현을 하게된다. 예컨데 변화있거나 리듬이 있는 공간이 아닌 동일한 천장높이의 균질한 공간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는 개발주체의 자의적인 욕망과는 거리를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건축양식은 '교환가능성, 탈주체성'에 알맞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고, 탈주체성을 제안하지만 개인적 욕망을 전면 부정하지 않아야 획기적인 성공을 한다.
미스가 제안한 유니버설 스페이스는 두개의 수평면(천장과 바닥)이 만드는 균질한 공간이고, 간단한 파티션이나 자유로운 가구배치를 통하여 공간을 구획하여 개성과 기능을 부여하게 된다. 이를 다시 말하면 파티션, 가구같은 사물은 욕망에 굴복해도 되지만 건축물 자체는 욕망에 굴복하면 않된다. 즉 건축물 자체는 사물, 상품이 놓일 장소라는 것이다.
유니버설 스페이스의 성공요인은  욕망을 긍정하면서도 욕망에 굴복하지않는 건축의 존재에 비밀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와서는 자본과 상품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래서 건축도 팔릴 수 있는 상품이 되어야한다.
주체로서의 자본에 대한 대응물이 무개성의 유니버셜  스페이스이고, 대상으로서의 자본에 대한 대응물은 개성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다.

◎ 입체파와 미래파
입체파는 기하학과 추상성이고, 미래파는 운동성과 역동성이 주제이다. 기하학과 무브망(Movement)의 결합은 에리히 멘델존의 아인슈타인 타워같이 표현주의로 갈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데 스틸은 기하학적 형태의 단위를 만든후 그 틈에 무브망을 결합하였다. 그래서 '기하학과 무브망(movement)의 결합'이란 표현대신 '공간과 시간의 회화젹인 화해'라고 표현하였다.

◎ 보편 vs. 특수
요시자카 다카마사 - 내가 표현할수 없는 언어로는 말할수 없다.
보편 vs. 특수 의 논쟁은 중세의 신학논쟁에서 유래하였는데 "보편은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인간의 사고안에서만 존재하는가"로 말할수 있다. 전자는 실재로, 후자는 유명론이다.

관심있게 읽었던 것은 위에 언급한대로 모더니즘, 르 꼬르뷔제가 나온 부분 이었습니다.
그리고 '진다'는 논리로 말한다는 것에서는 솔직히 찔렸습니다. 저도 많이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됩니다. 또한 쿠마 켄고가 말한대로 말을 하게 됩니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말이 있고, 핑계없는 무덤없다는 속담과 딱 맞는 말입니다.


오랜만에 전공관련 이론도서를 읽으니 힘드네요.
앞으로는 이런 책을 더 읽어봐야하겠습니다.
Posted by The 賢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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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제의 유작인 피리미니 성당(피르미니 베르의 성 베드로성당이 정식명칭이지만 보통은 피르미니성당이라고 합니다.)이 지난 2006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벌써 4년전인데 전 이제야 알았습니다.

르 꼬르뷔제는 7개의 성당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롱샹성당이후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음에도 그 이후 라 뚜레뜨 수도원과 본 성당의 설계만 수락했는데 아마도 설계를 함에 본인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있을때만 수락한 거 같습니다.
위치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리용에서 남서쪽으로 약 75㎞정도 떨어진 피르미니라는 곳에 있습니다.
대지의 위치는 운동장의 서쪽에 있습니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본 모습니다.
아래는 구글에서 지원하는 사잔의 모습니다.
빛대포는 여전합니다.
내부의 모습입니다.
출입구에 있는 사인인데 꼬르뷔제답습니다.

상부에 빛대포가 있는 것은 라뚜레뜨수도원의 모습과 동일하고, 내부 창을 낸 것은 롱샹성당과 동일합니다.
내부의 창은 샹디가르로 가던 비행기의 창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르 꼬르뷔제가 죽기전에 매달리던 유작입니다. 1960년대니까 2006년에 완공한것은 약 40년이 지나 건물이 완공되었네요.
과거 르 꼬르뷔제가 했던 노출콘크리트의 작품보다는 콘크리트의 면이 깔끔하게 마감된 듯 합니다.
기술의 발전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는 알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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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e 賢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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